혼자 타세요?

청학동에서 동춘동쪽으로 청량산 아래 자락을 돌아 나가는 길은
가끔 여행가는 기분이 들 만큼 도시에서는 흔치 않은 길이라 난 아주 기분이 좋아집니다.
매일 지나가는 그 길이 짧긴 하지만 때론 설악산도 되고, 지리산, 치악산도 됩니다.

퇴근 길이라 느긋하게 가고 있는데 뒤에 빨간 라노스가 계속 다른 차에 끼어 드는 것이 보이더니
내 앞으로 또 끼는 겁니다.
다른 때 같으면 그렇게 무작정 끼면 용서못하지하며 거의 대부분 안 끼워 줄 심사였지만,
하긴 내 심사와 관계없이 다 끼여드는데는 특허를 갖고 있긴하지만요.
워낙 무작정, 막무가내로, 당당하게 끼여들어 반항도 못하고 가는데 좀전까지 좋았던 기분이 영—
그리하여 잘 가더라면 해피엔딩 옛날 얘기죠.
오늘은 초보, 내일은 람보라 하더니 거의 람보 급으로 가던 그 차는 정지신호도 무시하고 달려가
맞은 쪽 좌회전 차를 들이 받고야 섰습니다.
일순간에 당당하던 스타일 구겨지고, 차는 찌그러지고, 사고를 수습하려 내리는 그 여인네의 얼굴은
백지장. 한마디로 참담이었습니다.
솔직하게 고소한 기분도 들었습니다.
끼어 들더니 남들 다 서 있는데 왜 혼자 가구 난리람
그런데 신호가 바뀌어 그 차를 뒤로 하고 오는 길에 입맛이 더 써졌습니다.
사실 안 당했다 뿐이지 나도 그보다 더 나을게 없다는 생각과 어쩌면 진짜 급한 일이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기에
순순히 양보해 주지 못한 내가 오히려 미안하였습니다.
무심코 지나치는 거리의 표지판에도 써있는 두글자 양보 yield가 왜 그리 어려운지요.
아마 둘 중 하나 이겠지요. 양보하지 못하는 것은 머리가 나쁘다거나, 마음씨가 나쁘거나.
출발하기 전에 기도하면 뭐합니까?
달리는 새에 주님은 내려 놓고 허다하게 혼자 질주를…

그 날 빨간 라노스의 여인네에게 진심으로 미안합니다.
양보하지 못한 모든 일에도 미안합니다.
혼자 달릴때 가슴 조이시며 막아주신 주님께 감사합니다.
주님이 타고 계심을 잊지 않으렵니다.

어리석은 내가 오늘도 내일도 남의 불행으로 교훈을 얻으며 살지 않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