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하던 날

교실 이사하던 날
먼저 전원이 나가고, 인터폰 연결 끊어지고,
전기가 나가니 컴퓨터란 것이 별것이 아닌 말 그대로 깡통의 상태가 되었지요.
전원이 나갔다는 그 단순한 사실 하나로 그 다음은 상상 했던 것 보다 더한 혼동이 왔습니다.
환경이 달라지니까 일상적으로 하던 것에 이상하게 아이들이나 저나 동요가 됩니다.
워드프로세서에 어느덧 익숙해져 글씨쓰기가 어색하고 아이들은 시종 구별을 못하고 들락 날락.
ICT라는 것에 익숙해진 탓에 인터넷이 끊기니 그동안 인터넷에 의존하던 모든 활동들이 모두 헛것이 되고 세상과 단절 된 듯
교회 홈페이지 등 각 싸이트는 그림의 떡
옛날처럼 칠판과 육성에 의존하여 수업을 하고
인터폰이 안되니 전달은 모두 보발 파발로 하며 핸드폰 이용도 쉬운 일이 아니었지요.
교사 각자의 핸드폰을 이용하여 전달이 안되는 사연이 가지가지였습니다.
오늘따라 핸드폰을 안가져와서, 방금 배터리가 나가서, 가방에 넣어 두어서, 벨소리를 못들어서 등등…
어쩌면 우리가 말씀을 그대로 따르지 못하는 이유와 그렇게 흡사하던지요.
이런 때를 위하여 예비해야 되었을 것들이 한두가지가 아니었습니다.
허나 진짜 문제는 그 다음부터 발생 했습니다.
천여명이나 되는 아동이 각자의 책상을 갖고 이동하는 작업이라
출애굽을 방불케 하는 장면이 금방 연출되었지요.
어린 아이들이기에 사전에 주의 사항을 수십번 반복을 하고, 따라서 말하게 하고
일일이 한 명 한 명 가는 곳을 물어 보며 확인 또 확인하고 드디어 출발.
그러나 뒤따라 오던 아이들이 하나 둘 길을 놓치며 제 생각대로 가는 겁니다.
운동장에 의자 놓고 노는 아이, 남의 교실로 간 아이, 오다가 돌아간 아이,
책상 들고 갈팡질팡 방황하는 아이, 아직 오지 않는 아이, 친구가 거기가 아니라 해서 다른 길로 같이 가버린 아이
그리하여 제대로 찾아 온 아이들 34명중 7명뿐!
나머지 아이들은 손짓을 하고 이름 부르고 그래도 오지 않아 먼저 온 아이들이 데려 오고.
한정된 공간에서도 이렇게 이동이 어렵다니.
그것도 찰떡같이 약속하고 오직 각자의 교실로 가기로 정해져 있는데.
기막히고 웃음도 나더니 갑자기 이 사실이 웃을 일이 아니고 그건 두려움이었습니다.
그렇게 확실하게 알려줘도 길을 잃을 수 있고, 할 일 잊어버린다는 사실.
이게 마지막 날이었더라면?
가다가 주를 잃어버린다면?
나의 귀를 , 나의 눈을 어다에 두어야 할 지, 어떻게 살아야 할 지가 다시 한 번 깨우쳐지고
오늘이 세상 마지막 날이 아닌 것이 얼마나 다행이던지요.
어쩌면 우리 사는 모습이 이렇겠지요.
갈 길은 정해져 있는데 헤매이고 돌아보고 상처입고
정해진 길인데 비틀거리기도 하고 …
마지막 날까지 신앙을 지켜 천국에 이르기는 이 것보다 더 할 혼동이 있겠지요.
우리를 미혹케 하는 악한 영들은 얼마든지 많을 것이며 그것을 분별할 능력이 네게 없다면?
이삿짐을 옮기며 두려움에 기도했습니다.
인터넷 없이도 그 어떤 도움 없이도 주님 말씀이 잘 들리기를.
말씀으로 살기를.
흔들리지 않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