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사 둘

  1. 고3 그 위에

“아휴, 내가 벌써 6학년이야!”
희수가 말하자
“야, 난 고3이다”
희주의 말에 우리는 아무도 그 다음 말을 하지 못했습니다.
고3 이라는 말에는 엄청난 위력이 있더군요.
이 땅에서 대통령은 보통명사가 되지만 고3은 특별명사가 되어 버립니다.
사실 우리 집 뿐 아닐 겁니다.
대한민국 전체가 수능 시험 무렵이면 사회 전체의 이슈가 되어서 동네 빵집 떡집들이 들썩이며
휴지, 포크가 옷을 차려 입고 도끼까지 난무합니다.
교회에서는 고3을 위한 특별 기도를 합니다.
그 무렵 전국의 교회가 드리는 기도로 하늘이 놀라시는지 날씨 또한 범상치 않습니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 봅니다.
하나님께서 그 때라고 더 갑자기 고3에게 관대하시고 특별히 귀 기울여 주실까요?
아닐겁니다.
우리의 기도는 범사가 아닌가요?
희주가 고3이라는 사실이 시험을 아직 치지도 않는 때에도 마음이 떨려오고 앞으로 며칠이 남았나
세어보기도 합니다.
하지만 점점 이런 생각이 들게 됩니다.
그렇게 중요한 고3을 위한 기도를 하려면 초등학교 입학 했을 때부터,
아니면 그 이전에 부터 했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어느 대학에 언제 입학 하느냐보다 더 귀한 일들을 각자의 분량대로 이미 하나님 계획 안에 예비해 놓으셨음을
믿습니다.
그래서 고3은 특별이 아니라 범사입니다.
고3위에는 고4 혹은 재수가 있는 것이 아니고 신입생도 아닌 주님의 예비하심이 있습니다.
우리 희주에게 모든 수험생들에게도 함께 하십니다.
주께서 이미 말씀해 주셨습니다.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 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1. 새벽에도

U턴하여 들어와야 할 차가 느닷없이 도로를 가로 질러 들어 옵니다.
ㄷ교회라 씌여진 글자가 새벽 별빛에도 십자가와 함께 선명하게 보입니다.
신호를 기다리고 있던 나는 민망하여 신호를 기다리고 있기가 머쓱해 집니다.
새벽 기도 성도를 태우러 가나 본데 길어야 몇분을 그렇게 벌어서…
하긴 밖에서 기다리는 추운 성도를 위함이라고 억지로 이해해봅니다.
가뭄에 콩 나듯도 아니고 어~~쩌다 1년에 겨우 몇 번 드리는 새벽기도가 이래서 설레임에서 가슴 졸임으로 시작됩니다.
가끔 나도 그런 유혹을 벗어나지 못할 때가 있지요.
차를 사면 당당히 달고 다니겠다던 물고기표를 아직도 못달고 있으니까요.
게다가 폼잡고 찬송가를 크게 틀어 놓고 여유있게 가자면
아직도 깜깜한 새벽에도 사람들은 이미 여유와 이별 했는지 금방 느낍니다.
뒷거울 멀리 한 대의 차가 보이더니 이내 속력이 느껴지게 가까이 옴과 동시에 내 옆을 경적을 몹시 울리며 지나칩니다.
그리고 한 수 가르쳐 주고 가지요.
천천히 가면 못 참겠다는 저속 운전에 대한 응징 내지는 경고?
새벽길에 달랑 그 차와 나 두대가 가고 있었건만.
U턴을 생략한 그 기사 집사나 경적을 울린 그 운전자, 그리고 물고기표를 못 붙이는 나.
모두 같은 사람들.
주님은 가장 좋은 것으로 주셨는데 우리는 늘 이렇게 엉겨 버리고 맙니다.
주님은 여전히 평안을 주시지만 조급 한 건 늘 미련한 우리임을 고백합니다.
졸지도 아니하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며 지켜주시는 주님을 믿으며 올 한해 여유있게 범사에도 평안을 누리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