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이

훈이를 보았습니다.
훈이보다 더 내 눈에 들어 온 것은 사실 훈이의 엄마였지요.
해가 바뀔때마다 사랑하는 자식때문에 가슴 앓으면서도
내색하지 못하고 견디면 살아온 시간들이 고스란히 얼굴에 담겨 있었습니다.

훈이는 자폐아입니다.
다니던 학교가 폐교되는 바람에 특수학급이 있는 곳을 찾아 전입을 한것입니다.
가깝지도 않은 곳에서 받아 준다는 말이 그저 고맙기만 했다는 훈이 엄마.
처음부터 훈이가 우리반에 배정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여러 사정으로 바꿔야만 하는 사정이 발생했고 그 애에 대한 별다른 정보도 없던 내가 그만
순식간에 맡아보겠다는 말을 하고 말았습니다.
속마음은 사실 우와, 이를 어쩌랴였지요.
이미 대답을 했지만 솔직히 걱정으로 마음이 가볍지만은 않았습니다.
막상 훈이보다 훈이 엄마를 보니 아픈 가슴이 왜 그리 내게 고스란히 전해오던지.

올해는 내게 맡겨진 아이들을 골고루 사랑하게 해 달라고 다른 때보다 더 열심히 기도했었습니다.
그렇다면 다른 해에는 그렇지 않았단 말인가 하는 생각도 했습니다.
처음 우리 반 아이들을 보고 내 기도가 응답 된듯이 모두 예쁘고 착해 보여서 기분도 좋았습니다.
그러나 훈이 전입 문제가 거론되자 마음 속에서 많은 갈등을 하였습니다.
내 업무가 많다는 핑게를 생각해 놓기도 하고 경험이 없음을 이유로 내세울 준비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럴수록 마음 속에서는 나의 그 골고루 사랑하겠다는 말은 단지 정상아만을 위한 것이냐는
갈등이 자꾸 삐죽 삐죽 올라오고 결국 참지 못한 내 입술이 먼저 항복의 말을 하고야 말았지요.
그러나 우리반에 보내라고 말한 것은 왠지 내가 아닌 것만 같은 생각이 듭니다.
훈이 같은 아이를 매스컴에서만 보았기에 난 아직도 생소하고 자신없기만 합니다.
지금은 도우미 선생님이 많이 도와주고 있지만 1년은 얼마나 긴 시간이 될지요.
이 분야에 전혀 경험도 지식도 없는 내가 왜.
갑자기 괴성을 지르고, 자리에서 일어나 순식간에 달아나고, 언어 소통도 안되는데 어떻게 내가.
훈이 엄마가 말했습니다.
주님 뜻인가 봅니다.
정말 그런가 봅니다.
교회에서 찬송가가 나올때에 제일 기뻐하며 안되는 발음으로라도 외워서 부른다는 훈이.
거절과 편견으로 더욱 상처난 훈이 엄마를 주님 사랑 아니면 어찌 위로 하겠습니까?
자신 없지만, 능력 없는 나이지만
오직 주님의 사랑으로 한번만이라도 소리나는 구리요 울리는 꽹과리가 되지 않기를 기도하는 마음,
난 할 수 없지만 주님이 할 수 있게 하시리라는 믿음,
그것뿐입니다.
보이지 않는 도움의 기도와 손길 그것뿐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