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걀이 아니라

부활절 이후의 기쁨은 우선 달걀 껍질을 학교에서 하나도 발견하지 못했다는 겁니다.
작년에는 그렇게 다짐하고 나눠주었건만 교내 여기저기 널린 달걀 껍질땜에 얼마나 얼굴이 뜨겁던지 다음에는 주지 말아야지 하고 결심 아닌 결심도 해 보았지만 결국 또 나눠주고 마음 졸였습니다.
나의 고민을 아는 동료 교사가 올해는 달걀 껍질이 발견되지 않는다고 알려주기까지 하여
그렇구나 하며 내심 기쁘면서도 월요일까지 기다려 보기로 하였습니다.
주번이었던 그 후배가 교외를 순회 하다가 아무렇게나 버리고 간 달걀 껍질이 내가 나눠 준 것이란 것을 알고 열 받아서 우리 교실까지 시위하러 왔었던 일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믿지도 않는 후배까지 부활절이 다가옴을 알고는 그래도 달걀을 부탁하는 바람에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랴 하는 생각으로
금요일 저녁에 달걀을 삶아 갔습니다.
한 60개 정도면 우리반 아이들하고 작년 동학년 선생님들 까지 다 되겠다 싶었습니다.
교무실, 교장실 여러 교실에 들러서
부활절 입니다하며 돌리다 보니 기쁨이 저절로 솟아 납니다.
해서 기쁜 나머지 학교에 사무차 들른 사람들까지 돌려주고 말았습니다.
그러다보니 어쩌면 모자라겠다 싶었는데 훈이 엄마가 100개나 삶아 온 것입니다.
모자라야 할 것이 먹고도 남았습니다.
문제는 우리 반 아이들에게 어떻게 하면 뒷처리까지 잘하게 할까 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죽음에서 다시 살아 나셨단다. 그 날을 기억하고 예배드리는 날이란다.
여기까지는 작년과 동일한 말입니다.
그러나 올해는 아담과 하와까지 거슬러 올라 갔다가 노아의 방주 얘기,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 영화의 잠면을 더듬으며 애기 할때는 아이들 앞에서 목이 메이고 눈물이 고이고야 말았습니다.
더군다나 아이들이 미동도 하지 않고 듣고 있기에 소름이 돋을 정도 였습니다.
여기까지도 같은 장면 입니다.
작년에도 조용히 듣고 감동 받았던 것 같은 아이들이었기에 껍질 처리를 잘 하길 부탁하고 하교 하였는데 말짱 헛것처럼 껍질이 여기저기 있어 실망스런 마음에 올해에도 별 기대를 하지 않았습니다.
월요일 다른 때보다 이른 아침
우리반 아이들이 오가는 길에 진짜로 껍질이 하나도 없습니다!
오늘은 6학년 주번도 여행가고 없는 날이라 청소할 사람이 없었을 텐데.
부활절에 달걀을 주게 된 이유를 말해 주면서 아이마다 예수님은 사랑이시란다.란 말을 일일이 했습니다.
그 말이 아이들을 움직였을까요?
그 한마디에 성령께서 함께 하셨었다고 난 믿습니다.
순수한 아이들이 예수님의 사랑을 잠시라도 생각했으리라 여겨집니다.
이제껏 내가 준 것이 달걀이었다면 그날은 달걀이 아닌 한 알의 사랑이었던 것이겠죠.
모자랄것 같던 달걀이 오히려 남아 교회에 가져다 놓게 된 오병이어 같은 기적.
그리고 생각할수록 감사가 일어나는 마음.
부활절의 기쁨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달걀이 아니라 주님의 사랑으로 늘 기뻐해야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