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 속에서

우리 집 마지막 남은 어린이를 위해 전 날 미리 선물을 사 준고로 느긋한 어린이날 아침밥을 먹고 있다
시아버님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또 어디를......
쉬고 싶던 나는 솔직히 밖으로 모시고 나가고 싶지 않았습니다.
이른 봄에 충청권을 이미 돌아드렸기에 설마 장거리는 아니겠지 했습니다.
내가 전화받기 전에 아들이 받고 승낙을 했을 터인데 또 나를 찾아 확인을 하시는 겁니다.
전화 목소리를 듣던 나는 마음과 달리
그럼요, 가야지요. 잠시 후에 희수랑 같이 갈게요.하고 말았습니다.
우리 집에는 유명한 가짜 클럽 회원 셋 (희주를 뺀 전원 )이 있어 오밤중에도 ~가자 말 떨어지기가 무섭게 잘 나서지만
오늘은 탈퇴하여 진짜 쉬려고 했는데…
시집 온 지가 올해로 20년.
처음에 뵌 시아버님은 너무나 표정이 없이 무뚝뚝하셔서 그저 어렵기만 했습니다.
몇 년이 흘러도 어려움은 그렇게 쉽게 가셔지지 않았지요.
그런데 근엄하시기만한 아버님에게서 요즘 몇년 새 부쩍 세월이 느껴집니다.
운전에 선수 이시건만 어디를 가자면 아들을 꼭 부르시고 다른때 같으면
거의 명령에 가까운 분부로 우리는 말씀만 하소서 수준이었는데
언제부터인가 우리의 반응을 살피신다는 느낌을 갖게 되었습니다.
어멈아 너도 가지. 그 말 한마디에 따라 나섰습니다.
김포 친지 댁을 거쳐 문산까지 왔을때는 이미 오후 해도 한참 눕고 싶은 때였지요.
작은 골목안 음식점에 아버님 친구분 두 분이 오셨습니다.
우리 딸 아들 커서 내가 마흔을 훌쩍 넘기는 사이 아버님 처럼 어렵기만 하던 친구분들이 어느덧 세상을 떠나시고
남은 친구들이 검버섯 거뭇거뭇 비치는 얼굴로 세월의 덧없음을 말합니다.
서로 잔 기울이고 얘기를 나누는 동안 할 수 없이
시간을 때우려 임진각엘 갔더니 이게 웬일입니까?
내가 알던 그 임진각은 어디가고 평화랜든지 뭔지 유원지가 되어 아이들 어른들이 엉켜 이리 몰리고 저리 몰리고.
옛 기억의 흔적조차 없는 그 곳에서 남편과 번갈아 줄서가며 아들에게 오락기구를 태워주는 효도를 했습니다.
헤어지면서 서로들 이러시더군요.
이게 우리 마지막 만남 일지도 몰라. 잘 들 살라구.
생각 같아서는 시간을 우리가 붙잡아 드릴테니 또 만나시라고 하고 싶으나
아무도 세월을 붙잡지 못합니다.
시아버님이 우리에게 의지하듯 우리가 우리 자식들에게 의지할 시간이 또 오겠지요.
서로 가족이라는 만남으로 사는 동안 그저 사랑으로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때로 어긋나 부데껴도 사랑 아니면 무슨 치료가 될 것이가를 생각합니다.
인생 칠십이요 강건해야 팔십 이라는데
그 살같이 빠른 세월을 어떻게 잘 보낼 것인가.
잘 살다가 주님 앞에서 웃으며 만나야지.
어린이 날과 어버이 날을 섞어서 쓰고 집에 돌아 온 때는 밤 10시가 넘어 있었습니다.
빠른 세월 속에서도 주님만 바라볼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