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설

내가 걱정이 팔자인 사람은 아닙니다.
그러나 어렸를 적 이런 걱정들을 많이 했습니다.
우리 부모님이 내가 어릴 때 돌아가시면 어쩌나,
반공 방첩이란 표어가 여기저기 붙어 있던 시절에는 혹시 전쟁이 나면 어쩌나 등 등
그 중에 걱정을 한 것은 겨우내 눈이 쌓여 이루어진 빙판이 어쩌면 없어지지 않을 것 같은 생각 땜에,
결코 녹지 않을 것같아 보이는 그 얼음 위로
어린 나는 혼자서 아주 심한 절망감까지 느꼈었습니다.
그러나 어김없이 봄이 오고 , 햇볕 뜨거운 계절이 와서
겨울의 흔적이 까맣게 내 생각 속에 남아있지 않을 때에야 비로소 계절을 보내주시는 그 분을
잠시 생각해 내곤 했습니다.
그 햇볕으로 다시 살아나는 만물을 보며 고마움을 생각해 보기도 하면서.

어느 해인가, 길 위의 쌓인 눈이 스르스르 녹아내리는 걸 보며 봄이 멀지 않음을 느끼던 날,
경비실 뒷편 한 구석 나무 틈새로 아직도 굳은 얼음인채 위에는 덕지덕지 까만 먼지까지 앉아
녹지 못하고 있는 잔설을 발견하였습니다.
그것은 길 위로 녹아 내리는 눈물들과는 다른 묘한 느낌을 주었습니다.
무슨 사연으로 아직도…
그 즈음 육아 등의 문제로 우울하던 나는 그 잔설이 꼭 내 마음을 들킨 것만 같았습니다.
잡다한 상념으로 얽히고 타인을 향한 섭섭함이 미움으로 번지는 내 마음을 어쩌지 못하던 나,
쉽게 녹아지지 않는 마음의 잔설!
마음 반쯤이 미움으로 얼어 있던 나.
난 눈물을 안으로 삼키며 내 마음의 잔설부터 녹이기 시작하였습니다.
결국 그 눈도 녹고, 다시 겨울이 오고.
쉽지 만은 않았지만 이젠 때가 되면 스스로 녹아지는, 녹아지려 애쓰는 내 자신을 바라봅니다.

벌써 신록 우거진 6월의 태양이 따갑습니다.
주 앞에 거칠것 없는 찬양이 올려지는 기쁜 날을 앞두고
아직도 마음에 혹시 찬 눈이 남아 있을 나를 위해, 누군가를 위해 마음을 엽니다.
오늘도 조건없이 주시는 내려주시는 뜨거운 저 햇볕도 내게는 사랑인것을.

뜨거운 마음으로 올려지는 찬양에 잔설은 없을 것입니다.
오직 주께 영광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