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협 그리고 비상

언니가 편안하게 웃으며 한 말 한마디에 난 속으로 참 많이 당황 했습니다.
내가 코람데오 그 후라는 글을 잘 쓰긴 했는데,물론 자신에게 쓰라면 못 쓰지만
내가 한 그 물음들이 언니가 눈물 흘 릴 수 밖에 없었던 그것은 아니라는 겁니다.
그 날 참 많이 감동하고, 받은 은혜 충만하고, 그래서 마음 그득 주님을 안고 힘을 얻는 나였지요.
그러나 언니 말을 듣는 순간그 받은 은혜들을 담아 내려고 겨우겨우 찾아 낸 말들이
순식간에 내 눈 앞에 포말처럼 나부낍니다 .
와, 들켰구나. 내 짧은 능력을.
그런데 그 다음 말이 나를 더 정신나게 만듭니다.
언니가 눈물 흘린 이유는 찬양의 그 시간에 함께 하지 못한 사랑하는 많은 사람들을 주님 앞에
모두 함께 올려 드렸다는 것.
어디에 있건, 무엇을 하고 있든지 동일한 은혜를 기도 할 수 있는 넓고 깊은 믿음을 가진 언니.
그 순간 글 줄 짧은 것보다 더 심하게 작아만지던 내 믿음.
내 시야는 아직도 미처 비상하지 못한 갈매기, 날개 다 못 편 독수리였던 겁니다.
편협, 그것이었습니다.
그 날 참석하지 못한 희주아빠 그리고 머릿 속에 떠오르는 사랑하는 가족들을 안타깝게 여기면서도
내가 받은 은혜에만 감사하여 그 자리에 올려야 할 많은 사람들을 난 생각도 못한 것입니다.
내 편협한 믿음으로 올려 드리지 못한 사람들을 기도 속에 다시 불러 모으기 시작 했습니다.
그리고 편협한 나의 신앙보다 훨씬 높이 멀리 날고 있는 언니를 보았습니다.
깊은 사랑이, 넓은 믿음이 훨씬 높이 날 수 있다는 것.
믿음은 계속 날아 올라야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는 것.
쉽지 않은 믿음의 길,
부족한 나여.
세상의 미움, 증오, 절망등 편협한 생각의 사슬을 끊고 날아 오른 조나단 리빙스턴 시걸
그 한 마리 갈매기가 떠오릅니다.
나도 올라보렵니다.
울 언니처럼, 다윗처럼, 바울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