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답

학생들이나 성도들이나 제일 두렵고 싫은 단어가 의미야 다르지만 시험이겠지요.
얼마 전 국어 시험에 이런 문제를 냈습니다.
보기를 보고 같은 표현방법으로 시를 지어보자는 것입니다.
보기는 허리를 굽히면 햇살도 힘줄이 쬐끔 당겨오고 란 싯구였고
문제는 두 팔을 벌리면 ( )로 ( )를 채워 쓰기였습니다.
다들 그럴 듯하게 써서 기특하다 싶었는데 한 아이가 ( )안에 겨드랑이가 시원하다라고 썼습니다.
두팔을 벌리면 겨드랑이가 시원하다고?
채점을 하다가 기막히단 생각에 얼마나 웃었는지 모릅니다.
다시 시험지를 나눠줄 때에도 반 아이들과 한바탕 웃음으로 즐거웠지요.
이번에는 학기말 시험.
국어 시험에는 으레 본문이 있고 그것을 읽고 물음에 답을 하라는 형식이 으레 있지요.
본문이 주어지고 문제는 윗 글은 무엇을 하기 위한 글인가요? 하는 것이었습니다.
바로 그 아이가 쓴 답.
문제를 풀으라구
이번에는 웃다가 웃음이 멈추어지더군요.
이 아이는 국어교육에서 요구하는 문학적 내지는 문장 적용 능력은 떨어질지 모릅니다.
그러나 문제를 가감없이 직시하는 능력이 남다름을 발견한 나는 놀라웠습니다.
정답은 방송극이었지만 답이야 틀릴 수 있지요.
본문이 무엇이 되건 설명문이건 시가 되건 간에 어쨌든 문제를 풀라고 내 놓았다는
본질은 변하지 않는 정답일 겁니다.
한 번 두 팔을 가만히 들어 봅니다. 그 참에 기지개도 켜보고.
정말 시원하네요.
문제 있습니까?
우리가 고민하는 모든 문제들은 다 풀라고, 풀어야만 한다는 명제를 안고 있지 않을까요?
풀지 않고 품고 회피 할수록 마음에는 부담이 되니 결국 결과가 어떠하든지 어차피 우리는 문제를
풀어내야 하는 현실 속에 살아갑니다.
우리는 늘 문제 속에 요동치나 늘 변개치 않는 주님께서
내 속에서 문제를 풀라
그러시지 않을런지요?
복잡한 이유 찾지 말고 항상 기뻐하라면 기뻐하고, 쉬지말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하라는 단순함이
그리스도 예수안에서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라 하셨음을 왜 늘 잊게 되고 어려워만할까요?

그 시험지에 난 별표를 여러개 해 주었습니다.
영문을 모르는 그 아이에게 이렇게 말할 겁니다.
사람들이 잘 풀지 못하는 문제를 그리도 잘 푸냐구. 나중에 나중에 정말 어려운 문제를 못 풀때도 그렇게 단순하면 된다구

우리에게 필요한건 어란아이 같은 순수함, 단순함이 아닐까요?
그게 정답인 것만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