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사마리아인

가끔 핸드폰에 이상한 문자 뜹니다.
외로우시죠? 하면 나 바쁘거든 하고 덮어 버리고
오빠, 놀러오세요하고 뜨면 언니네요하고 무시를 하곤 했습니다.
밤 늦은 오후 쇼핑 센터에서 벨이 울렸습니다.
소리샘으로 연결합니다 식의 목소리가 말합니다.
이 전화는 수신자 부담이니 통화를 원하시면 1번을...하는데 재빠른 내 손이 먼저 수화기를 덮어 버렸습니다. 누가 광고를 돈 내고 들으랴 라는 생각과 동시에 나가버린 재빠른 내 손. 그러나 문제는 그 다음 입니다. 그러고 나니 마음이 영 개운치가 않은 겁니다. 혹 누가 나에게 진짜 긴급히 연락을 해야 하는데 배터리가 없다든가 전화카드나 동전이 없다든가 그런 상황이었을 지도 모를 일이고 아니면 혹시 내가 수신자 부담 전화라도 남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받아주는 아량이 있나 알아 보는 것은 아니었을까? 별 별 생각을 하며 집에 돌아와 딸에게 얘기를 해주니 몇 백원 밖에 안 하는 데 뭘 그걸 못 받아주고 생 고민이야 합니다. 어지러웠습니다. 다시 전화를 살피니 알지 못하는 번호가 떠 있습니다. 그 번호를 내가 가지고 있는 번호부와 대조를 해 보아도 없더군요. 혹시하고 온갖 친구, 친지 번호를 살펴보아도 역시 없습니다. 별일 있으면 다시 하겠지`라고 딸애는 말했지만 난 그 밤 내내 불안했습니다.
그 밤에 어느덧 거절에 길들여진 나를 발견하였습니다.
아는 사람에게는 친절하자 하지만 모르는 것에 대하여 타인에 대하여 얼마든지 당당하게 냉냉할 수 있는
나를 보고서 난 깊이 절망감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그 전화의 주인공에게 제발 아무일이 없게 해 달라고 뒤 늦은 기도를 드려야 했습니다.
난 그 때 착한 사마리아인을 떠 올렸습니다.
생면부지의 사람에게 온정을 베풀고 자신의 돈으로 유숙하게 하며 돌보아준 그 사마리아인이 내 머리를 심히 때렸습니다.
돈이 아까워서 였던 것도 아니면서 돕고 살아야 한다고 늘 생각했으면서도 그렇게 익숙하게 거절한 내가
영 싫었습니다.
그 밤에 난 남의 불행을 지나친 나쁜 사마리아인이었는지도 모릅니다.

며칠 새 내 주변 사람들에게는 아무 일이 없는 거 보면 아무것도 아닌 전화 인것도 같긴 같습니다.
늦게나마 조심스레 그 번호를 눌러 보았습니다. 아무 반응이 없습니다.
.참, 주께서 그 밤에 KT전화를 이용한 것은 아니셨을까요?
다행입니다.
그러나 모를 일입니다. 정말 모를 일입니다.
난 아픈 가르침 하나 새겨 넣습니다.
어느덧 거절에 익숙해진 나를 다시 살펴 봅니다.
주 뜻대로, 주 안에서 살기를 간구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