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께

아버지
7월이네요.
하루 늦었습니다. 그래도 아직 미국의 아들은 5일이라 다행입니다.
담담하게 5일을 보내려니 기다리셨을 것 같아서,
살아서도 딸들 소용 없더니 세상떠나니까 아주 잊었구나 하실 것 같아 소식 전합니다.

얼마 전까지도 내게 여름은 참 많이 힘든 계절이었습니다.
사랑하는 부모님을 모두 여름에 여윈 나는 뜨건 태양 아래서 슬픔을 삭히기가
태양빛에 데이는 것보다 더 어려웠습니다.
살아가면서 새록새록 솟아 오르던 아쉬움과 그리움.
그것은 육신의 아버지를 뵙지 못함 때문과
남기고 가신 가족들의 변화, 살아 계셨다면 많이 예뻐하셨을 손주들과 며느리
무엇보다 주의 목자의 길을 택한 외아들을 아실까 하는 그것도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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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말씀드리기 외람되지만 부끄러운 구원을 이루셨습니다.
그것도 떠나시기 3일 전에야 일생을 피눈물로 자복하시며 주께 두손을 드셨습니다.
생각하면 그것도 복된 일이고 끝까지 사랑 하셨다는 징표겠지요.
그러나 주님을 찾기까지 너무 많은 시간을 허비하여 주님으로 인한 평안과 행복을 느끼지 못하셨음이 때론 치밀어 오는 아픔이 됩니다.
그러나 사실은 저희도 아버지 가신 후 주님과 많이 버성겼습니다.
어머니마져 쓰러지시고 몇해를 식물 인간으로 누워 계실때에야 제 자신이 온통 깨져 나감을 느꼈습니다.
우리 남매들 몇 해를 온갖 가시밭길을 걸으며 상처입었습니다.
전신을 상처 투성이로 떠나시던 어머니만큼 우리도 무수한 상처를 견뎠습니다.
그 끝에 주님이 계셨습니다.
분명한 주님의 음성을 들으며 이젠 주와 함께 승리 했노라 부르는 우리의 찬양을 들으시는지요?
우리를 향하여 어떻게 믿었기에 저럴까라며 비수를 꽂던 그 음성들에 대해서도 이젠 용서를 보냅니다.
주님이 입으셨던 상처를 내가 기억하며 함께 가슴 아파하셨음을 내가 알기에 저들을 사랑 할 수 있습니다.
아버지, 전 살아가면서 새로운 나를 찾았기 때문입니다.
주님과 함께하는 행복을 가슴에 새기며 살기 때문입니다.
죽을 만큼 억울하게 들리던 어떻게 믿었기에....가 믿음의 꽃으로 피어나는 걸 보이려 합니다.
그럴 겁니다. 꼭 그렇게 살렵니다.
아버지의 부끄러운 구원이 뼈아픈 교훈으로 남아 나를 잘 믿으며 살아가게 할 겁니다.
가지셨던 해박한 지식을, 찬란했던 꿈들을 반도 펼치지 못하고 가셨지만
주가 아니면 바로 서지 못함을 분명하게 알고 살아가는 아들과 딸들을 남기셨음이 정녕 감사입니다.
아버지는 생전에 책으로 내고자 두툼한 글 뭉치를 벽장 속에 간직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아버지의 글재를 조금은 닮았든지 저 말이지요, 내 짧은 문장도 주께 영광 돌리는 일에 쓰여짐이
아버지가 물려주심 일겁니다.
부끄럽지 않은 믿음으로 잘 살다가 주님과 함께 계신 그 밝은 곳에서 만나뵙겠습니다.
아버지 그립습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