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친구가 있습니다

오랜만이라는 말은 어쩌다 만나기라도 해야 하는 것인데 그 친구와는 얼굴 본 지가
거의 7, 8년이 더 되어서 오랫만이다 라는 말이 어울리지가 않을 정도였습니다.
혹 번호가 바뀌지나 않았을까 걱정하면서 전화를 했습니다.
다행히 그 친구의 목소리였습니다.
내 고교 동창생 입니다.
우리 친정 어머니가 세상 모르고 누워 계실 때였습니다.
나는 직장에 다니느라 동생이 어머니를 돌보고 있던 친정에는 며칠에 한 번 가 볼 수 밖에 없었습니다.
어머니는 중환이라 가래를 빼고 닦아 내느라 늘 휴지나 거즈가 필요 했지만
번번히 들어 가서야 생각이 났는데 어느날 하얀 거즈가 박스에 준비 되어 있었습니다.
누가 준비 했냐고 동생에게 물으니 늘 오는 언니 친구가 갖다 놓았다고 합니다.
늘 병문안을 다니면서도 그 친구는 나에게 내색도 하지 않았던 겁니다.
현금 인출기가 없던 시절, 한 번은 은행 시간을 놓쳐 돈이 필요 했던 나는 무심코 그 친구에게 빌려 달란 얘기를 했습니다.
친구는 얼마냐, 언제 갚을 거냐 한 마디 묻지도 않고 통장과 도장을 나에게 꺼내 주며 자기네는 아직 돈 쓸 일이 없으니 마음 놓고 갖고 쓰라 합니다.
아마 그 때 친정 어머니 때문에 돈이 많이 필요 할 거라고 짐작했던 모양입니다.
오히려 당황한 내가 말도 못하고 집에 돌아 오는데 마음이 얼마나 벅차던지요.
변함없는 목소리의 그 친구와 흰 머리난 얘기, 아들 딸 얘기를 했지만
창원과 인천이 너무 멀어서 쉽게 만날 방법이 없었습니다.
“얘 그러면 너 다음에 들어가서 ’영광의교회‘라고 쳐 봐.
거기 들어오면 나 대번에 만날 수 있거든.옥련동이다 인천 옥련동.”
“그러면 너도 들어와 봐라. 난 창원 한빛교회야. 한빛 교회도 여러 곳이란다.”
전화를 끊고 얼른 한빛교회에 들어가 보니 내 친구는 늘 푸른 교실이라는 곳에서
특수장애아를 가르치고 있었습니다.
그 친구는 대학에 강의를 나가는 데도 말입니다.
그 친구의 고교 시절의 꿈이 무엇인지 전혀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인간적 꿈을 접고 사는 것에도 무심하고, 그동안 별로 만난 적도 없었지만
친구와 나는 똑같이 하나님을 바라보며 살고 있음에 감사로 기쁨이 넘쳤습니다.
하나님으로 인해 시공을 초월하여 만날 수 있음은 커다란 축복이 됩니다.
아마 영광의교회에도 벌써 다녀가길 몇 번 했을 겁니다.
이 글을 혹 읽어 본대도 ‘내가 이랬었나’하고 대수롭지 않게 웃고 말 친구.
믿음을 나눌 수 있는 친구.
어쩌면 해봐야 시원하지 못할 세상 얘기보다 하나님을 만난 얘기로 앞으로 더 많은 시간을
보내겠지요.
내게는 이런 친구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