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두콩

세밑에 문경 새재를 걸어서 넘었습니다.
여러 해를 겨울에 감기 없이 잘 견디었는데
목이 아프도록 감기가 내게 달라 붙어 있었습니다.
우리 학년 교사들은 나를 살피며 갈 수 있냐고 근심스럽게 물어보고
난 내심 걱정하면서도 아, 이정도는 문제 없어요 큰소리 까지.
1관문 부터 3관문을 통하면 경상도를 넘어 충청도로 가게 됩니다.
3관문까지 6.3km 즉 15 리 정도
어구야 하면서도 왕건 세트장 구경하는 다른 일행을 뒤로 하고 먼저 출발을 했습니다.
10 리 정도를 가니 다 제 실력이 나옵니다.
제일 먼저 힘들어하며 쉬어가자는 사람은 일행중 제일 젊은이
뒤이어 선배 교사가 숨을 몰아쉬고
평평하던 길이 알게 모르게 언덕이 되어 갑니다.
이런 길이 더 약오르고 힘이 들지요.
드디어 저기 3관문이 눈에 들어오고
나는 1진으로 도착했습니다.
이제 기다리고 있는 버스만 타면 되려니 했는데
이게 웬일.
6.3km 이란 것은 순전히 3관문 까지의 거리이고 거기서 또 2.6km 인가를 가야 주차장이 나오는 겁니다.
감기 환자인 나보다 더 지쳐 쳐진 2진을 위로하며
터덜터덜 내려오는 길목에
날씨보다 더 추워뵈는 한 30대 중반의 아저씨를 보았습니다.
길 가에 좌판을 벌려 놓은 할머니나 아주머니는 많이 보았어도 젊은이는 생소하게 느껴졌습니다.
발가락까지 부르터 걷기가 힘들어 그냥 지나치려는데 내 몸이 내 생각과 의논도 없이 돌아서며 외치더군요.
어머, 작두콩!
돌아서며 좌판에 꽂아둔 글씨를 읽은 것 입니다.
그 소리에 사람들이 그 아저씨에게 갔습니다.
작두콩 한되를 달라하니 그게 뭔데 물어보며 다른 사람들도 모두 자갈 돌 같은 작두콩 한되씩을 샀습니다.
그 옆에 있는 은행을 보며 이마트보다 3배는 더 싸다 하며 그것도 꿇여 넣고.
검은 비닐에 가득 사 넣은 후 차에 올랐습니다.
일행들이 물어 봅니다.
그 작두콩이 그렇게 좋은 거냐, 어디에 좋은 거냐고
난 사실 그날 작두콩이라는 거 처음 보았습니다.
그런데 거기 있는 그 젊은이의 표정이 너무 추워 보이고 안 되었어서
어쨌든 콩은 몸에 좋은 거니까 하는 생각에 바람 잡은 것임을 이제사 고백합니다.
그러나 거의 9km에 이르는 길을 3관문 6.3km 라고 안내하여 걷게 한 안내판이나
알지도 못하는 콩을 좋다하여 사게 하니 결과가 얼마나 마음 흐뭇해지는지.
내 잠깐의 거짓말보다 팔면서 얼굴 밝아지던 그 젊은이의 표정이 내게는 더 진하게 느껴집니다.
일년을 시작하는 1월에 가져야 할 마음은 꼭 6.3km를 가려는 마음이 아니라
그보다 더 먼 길을 갈 수 있다는 여유와 믿음 일 것입니다.
그 먼 길도 언제나 주와 함께 동행하면서
때로는 의미 없는 작두콩도 선하게 쓰이길 기도하며 또다시 일년을 시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