댓가를 치루지 않은 감동

요즘 시대에 걸 맞는 소위 웰빙 제품이라는 예쁜 비누를 욕실에 놓고 나왔습니다.
희주 아빠가 들어가더니 비누가 없다고 가져오라 합니다.
그래도 없다고 하기에 확인하러 가니 그건 비누가 아니랍니다.
내게는 비누인 그것이 희주 아빠 눈에는 취미로 만들어 본 비누 비슷한 유사품일 뿐 입니다.
이런 일로 우리는 여러번 다투기까지 했지요.
대강 넘어가자는 나와 유사한 것을 그냥 넘어가지 못하는 성격의 차이로 해서 .
하긴 그렇더군요.
비슷한 것은 결국 가짜와 같아서 유사 한 것을 인정하고 넘어가면
나중에는 꼭 문제가 발생하게 되는 것을 여러번 경험 하기도 했지요.
물건도 그러할 진데 사람의 감정이야 말 할 것도 없습니다.

언젠가 뉴스에서 파양을 한 아주머니 이야기를 본 적이 있습니다.
자원 봉사를 나갔던 영아원에서 한 아기를 입양한 아주머니는 그 후 여러 문제가 발생하자
아기를 다시 돌려 보냈습니다.
돌려 보내진 아기는 상처로 정신과 치료를 받게 되었다는…
보통의 사람이라면 누구나 슬픔을 같이 나눌 줄 알고
같이 기뻐하고 아름다움에 도취 될 수도 있습니다.
불쌍한 사람을 보고 동정은 할 수 있으나 누구나 행동에 옮기지 못하는 이유는
그것을 끝까지 감당할 어려 여건이 자신 없어서 일 겁니다.

아까워서 그냥 쓴 유사품 비누는 결국 욕실을 날로 날로 더럽히게 되었고
섣부른 동정심으로 입양한 아주머니는 한 아기에게 상처를 남겼습니다.

감당 하지 못할 감동과 비슷한 감정은 사실은 가짜인 것입니다.
댓가를 치루지 않은 사랑은 사랑 비슷한 것일뿐
진짜 사랑은 모든 아픔을 다 무상으로 견딘 후에 오는 것입니다.
우리 죄의 댓가를 피로 치루신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길 또한
무수한 댓가를 치루며 가야 할 길 입니다.
내가 댓가를 치루지 않은 감동은 그저 값싼 동정이며 싸구려 일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