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긴대로

끔 거울을 보면 자신이 낯설어 보일 때가 있습니다.
좋을 때는 그럭 저럭 괜찮아(?) 보이다가도
기분 나쁘거나 우울하면 거울 속의 나도 영 엉망으로 보입니다.

주말 신문에 도서 소개에 창조와 진화론에 대한 책이 나와 있더군요.
다윈이 어쨌거나 말거나 창조론을 믿는 나 입니다.
그렇지 않을까요?
그리고 잘 안 도는 머리를 돌리며 저 먼 창세기로 날아가 보았습니다.
그 아름다운 에덴에 아담과 하와가 과연 허리를 구부정하게 굽히고
생각해봐도 그다지 아름다웠을 것 같지 않은 모습으로 뛰놀았다?
이상하더군요.
창세기를 찾아보았습니다.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그랬습니다.
우리의 형상은 바로 하나님의 형상이라 하셨습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
다른 어떤 것을 시킨 것도 아니고 하나님께서 직접 우리에게 생기를 불어 넣으신 것 입니다.
게다가 복을 주십니다.
부지되어 잘 살라는 정도를 넘어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그동안 또 잊고 살았습니다.
원래 우리의 생긴대로 하자면 하나님 형상에 생령을 가지고 모든 것을 정복하며 살 위대한 작품인 것 입니다.
때론 지으신 모습대로 살지 못해도
내 속에 거하는 모든 것이 하나님 뜻 안에 있다는 것에 감사 할 뿐입니다.
넘어져 상처나고 자신의 모습에 실망 할때도 있지만 어떠한 모습이든 여전히 우리는 뜻하신 당신의 형상인 것입니다.
만들어 주신 생긴대로 사는 게 가장 뜻 안에 있는 것이지만
생긴대로 살지 못하는 것 자체가 바로 우리 인간의 갈등이며 문제인 것을 새삼 느낍니다.
우리의 갈 길은 원래 뜻하신 생긴대로 사는 것.

며칠전이 장애인의 날이었습니다.
정신적이든 신체이든 장애는 장애일뿐 하나님께 나아가는 데는 아무런 장애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당신의 형상에 당신이 주신 생기로 사는 피조물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주 없이 살 수 없는 너무나 값진 존재입니다.
만들어 주신, 생긴대로 살아야 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