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 아시죠

[br] 작년에 가르친 아이들이 와서 편지를 주고 갔습니다.
돌아서는 아이에게 고맙단 말을 하고 이름을 부르려는데 어쩔거나.
순간 이름이 생각나지 않습니다.
등을 두드려주고 사탕을 주면서 생각해도 통~~~
며칠을 낑낑 거리다가 겨우 이름이 떠올랐을때는 이미…

퇴근 무렵 바지 단이 자꾸 내 발에 걸리기에 바늘을 찾았습니다.
바늘 귀가 작아졌는지 요즘 실이 굵어졌는지 도대체 들어 갈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언젠가부터 책을 보려면 안개가 가물가물 끼어서 책과 눈과의 거리가 멀어지더니
바늘 귀도 내 시야를 점점 벗어나고.

걸어다니는 전화 번호부라 자칭하던 내가 아들의 핸드폰 번호 가운데 번호가 4513인지
4315인지 번번이 헷갈려 단축키를 누르고야 말았을 때.
길에서 마주친 반가운 얼굴이 어디서 만났던 얼굴인지 도통 떠오르지 않을 때.
국물이 졸다가 졸다가 흠씬 그을러버린 냄비 앞에서
내 속은 냄비보다 더 까맣게 타버렸을 때…
영화 제목 '콘스탄틴’이 떠오르지 않아서 스토리에 이상 없으니 그냥 '리빙스턴’으로 하자고 딸에게 어거지 부렸을 때.

봄은 벌써 사라지며 여름을 재촉하고
아무리 총기 있다 하나 세월에 따라 하나 둘씩 허술해지는 면면을 발견하며 삽니다.

다행입니다.

나는 축복 받은 존재.
총기를 가지고 나아오라 하지 않으신 분을 내가 압니다.
지치고 상한, 버림받고 깨진 우리의 영혼을 위해 이 땅에 오신 이를 내가 압니다.
원래 인간에게 아무 보상도 댓가도 요구하지 않으시고
내리시는 은혜를 거저 받으라 받기만 하라 하신 분을 내가 만납니다.
더욱 주름은 깊어지고
기억이 저물어가도록 함께 할 예수 그리스도로 나는 넉넉히 기뻐하며
내리신 은혜 가운데 더욱 영글어가는 복된 발걸음을 옮기는 세상 끝날 그리스도 내 주를 만날 것입니다.
점점 짙게 패일 주름 마다에는 말씀을 새겨 넣으며
주와 함께하는 세월을 감사로 보낼 것입니다.
주여,
이런 나를, 이런 내 이름 아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