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에게

3ㅇ년 전 고등 학교 때 친했던 너의 전화를 받고

얼마나 기쁜지 나는 동창회 홈피에 자랑을 하며 집 나간 매누리 돌아 온 것 보다 더 기쁘다고

글을 올렸어,

야후에 네 이름을 치면 홈페이지가 나온다는 말에

난 수업을 마치자 마자 찾아 들어 갔지.

친구야 내가 어땠는지 아니?

처음에는 얼떨떨했고 그 다음에는 섭했고 이제는 슬프기까지 하다.

한 편으로는 아직도 세상이 그렇게 팍팍하지 않으며 정이 있다고 믿고 싶다.

네 홈피를 방문하고나서 사실은 나도 꼭꼭 숨겨 둔 내 홈을 열어 주려고 했다.

그러나 아직은 그냥 잠가둬야 할까보다

네가 들어 오라고 한 네 홈피에는 그렇게 궁금한 너에 대한 얘기는 한 줄도 없고

오직 팔고 있는 차의 종류며 선택 사양이라든지

할부는 몇 개월 이자는 등 등 그런 것만 너절 했다.

니가 아무리 카 딜러라고 했어도 30년도 더 넘어 목소리만 겨우 찾은 친구에게

그걸 알리고 싶었다고 난 정말 믿고 싶지 않다.

우린 고1때 엄청 친했잖니?

칼 힐티의 행복론을 찾고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느니

동서고금의 모든 식자들을 감히 입에 올리곤 했으며

E. A 포우의 에나벨리를 영어로 줄 줄 읊조리고 다니기도 했지.

결정적으로 다른 하나

난 그 때 예수 그리스도가 주는 알 지 모를 힘에 이끌려 세례를 받았다는 거였다.

넌 고2 무렵 서울로 전학을 갔다.

그리고 전화 소리에 무심한 내가 그 날 웬지 전화를 받고 32년 만에 목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조금은 슬픈 마음으로 네게 부치지 않을 편지를 남긴다.

네가 말한 것처럼 난 선생이고 인천을 벗어나지 못하고 산다

네가 힘주어 말한 분당에 살지도 않으며 앞으로 살 마음도 전혀 없다.

그러나 내 홈피를 찾아오면 말이다.

난 너처럼 얼마 짜리 얼마 짜리 하는 차 값 대신

나는 어떻게 사는 사람인가를 그리고 값으로는 차마 도저히 매길수 없는 예수 그리스도를 전한단
다.

나는 어디 사는 가에 그다지 관심이 없으며 나중에 어디서 영원히 살 것인가에 온통 집중하며 살기를 소망한단다

Sm도 아닌 내 차지만 난 당분간 차 살 계획이 없으니 어쩐다니?

혹 니가 차 팔아야 할 실적에 쪼들린 다거나

분당 사는 니가 그럴리 없겠지만 꼭 팔아야만 할, 생계가 네 손에 달린 상황이라거나 할까봐 그게 슬프다

친구를 오랫만에 찾은 게 그런 이유 일까봐서

난 분당 살진 않아도 기쁘고 자유하게 하는 한 분으로 참말 만족한단다.

도처에 많은 십자가가 네 눈에 띄이기를 기도 할게

그리하여 너도 진정한 행복과 기쁨을 알고

그리고 정말 반가운 얼굴로 우리 만나야지

지금은 분당 살지 않는 나도

분당 사는 너도 천당에는 가야 하지 않을까?

가까운 곳에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꼭 바라보렴.

그리고 주저없이 교회로 찾아가려므나 보고픈 친구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