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먹는 즐거움

말하자면 눈은 내렸을 뿐이고 정해진 명절을 맞았을 뿐이고 그리하여 나이 한 살 더 먹었을 뿐입니다
그러나 같은 날이라도 이름 붙이고 나면 새롭게 되는 법
덕분에 만이나 무엇이나 둘러치나 매치나 50을 더 넘겨 버려 이제부터는 나이는 숫자에 불과한 거야를 외칠까 합니다
며칠전 한 횡단보도에서 기다리다가 갑자기 펑펑 쏟아지는 눈을 맞게 되었습니다
눈을 보는 것과 동시에 속에서는 원망이 솟아났습니다
새차 한지 얼마 안 된 차 더러워질 거하며 내일 아침 출근 길 그리고 새벽에 일 나가는 딸 걱정 등등…
눈을 무슨 애물 보듯 하고 섰는데 한 아이의 함정이 들렸습니다
와 눈이다!!
그 소리가 갑자기 아주 커다란 울림이 되어 들렸습니다
눈이 올적마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열 번이면 열 번 다 소리치지만 다른 설명은 필요없이 그저 ‘눈이다’ 한 마디에 모든 기쁨이 다 들어 있지요
나도 어릴 적에는 그랬을 테지요
눈을 순수한 그 자체로만 보면서 기뻐하였겠지요
어느새 눈의 순수성은 무시하고 뒷 일 만을 걱정하는 어른이 된 내가 슬퍼졌습니다
순백의 아름다움만을 보고 즐길 수 없는 나이가 되다니…
지금은 잘 생각나지 않지만 내가 좋아하던 여배우 중의 하나가 까뜨린느 드네브 였습니다
그녀의 분위기며 빼어난 미모도 물론이지만 좋아한 이유는 미소짓는 얼굴의 주름 때문이었습니다
인생을 평안하게 받아 들이고 난 후의 자연스런 미소가 주름 속에 녹아 있는 것 같아 젊은 날의 그녀보다 더 아름답게 느껴졌습니다
요즘 우리나라 TV에서는 좀체로 자연스럽게 나이든 주름진 얼굴의 배우들을 볼수가 없어 유감이기도 하지요
IT강국 이 나라에 성형 또한 강국이라 그렇다니 이해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어쨌거나 나이 먹는 것이 신체의 변화 뿐 아니라 생각까지 바꿔 놓는다면 거기에 순응하며 살아야 하지 않을까요
내린 눈이 불편하긴 했어도 지나고 나면 그 때 일이 되고 나이 들어 생긴 주름도 두려워하며 살지는 않으렵니다
내가 나이 드는 사이 내 아이가 성장하였음과 그간 무사히 지난 일에 감사함의 훈장으로 주셨으려니 하여 늘어나는 주름살도 그냥 귀하게 여기며 살고 싶습니다
나이 먹음은 두려움이 아니라 저 본향 가는 길임에 한 살 더 먹은 오늘을 나는 즐거움으로 받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