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여인들

살아있는 사람도 아니고 돌아가신 지도 한참 지난 신사임당께서 요즘 수난을 당하고 계십니다.
고금을 통털어 내로라 하는 현모양처의 모델로 우리나라 모든 여성의 기대치 저 끝에 있던 분이 죽은 사람들이 갑자기 일어나 마치 어린 아이들이 맘에 안 드는 친구 이르기라도 하는 것처럼 현모양처가 아니라는 증거들을 들이대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쩔 것입니까?
이미 죽은 자들은 말이 없는데.
증인도 증언도 없으니 그저 그 분의 어떤 한 부분이라도 세상에 두고두고 기릴 점이 있었으리라 여길 수 밖에요
그러나 생각할수록 대단한 여인들을 요즘 만났습니다
다름 아니라 마태 복음 1장의 여인들 때문에 새삼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다말, 라합, 룻, 밧세바, 마리아
그 중에 마리아를 제외한 4명의 여인들은 어쩌면 그리도 하나같이 요즘 사람도 입에 올리기 어려운 일의 주인공들이라니…
시아버지를 기만하며 잉태한 다말, 그리고 라합은 알다시피 창기라지 않습니까?
룻도 다른 면에서 보면 일부종사 하지 못하고 개가한 며느리일뿐이며 다윗의 잘못도 잘못이지만 조신하게 목욕하지 못하여 하필 다윗을 현혹케 한 밧세바는 또 어떤지요.
인간의 눈으로는 모두 분명히 입에 오르내리기에도 부끄러운 모습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들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그 거룩한 계보에 나오는 할머니들임에 놀라움을 금하지 못하겠습니다.
생각해 봅니다.
만일 예수 그리스도의 조상 누구누구는 현숙하기가 이를데 없었으며 하늘을 감동 시킬만한 효부였고 재주가 출중하기로는 당대에 따를 여인이 없으며 지아비를 하늘 같이 알고 섬기며 자녀들 교육에 헌신하여 높은 벼슬을 자랑하게 하였으며 … 등등 으로 이어 졌으면 기죽고 감당하기 어려워서 어쩔 뻔하다?
그러나 그 악조건에도 그리스도의 조상이 되었다는 사실에 우리를 바라보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알겠습니다.
오직 주를 향한 믿음만을 보시며 어떤 상황에서도 겉 사람을 보지 않으시고 모든 이에게 믿음의 길을 열어 놓으신 희망의 메시지를 보면 때로는 다말, 라합보다 윤리적으로 난 얼마나 우월한가 하는 당당함을 갖게도 됩니다
믿기만 하면 무슨 일 , 무슨 잘못도, 우리 죄도 기억아니 하신다는 그 말씀으로 그런 여인들을 택하신 하나님이시기에 나도 택하여 주심을 믿으며 나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확신에 찬 믿음으로 믿음의 전당 히브리서 11장에 당당히 오른 라합을 바라보면서
수백년이 지나서 구설수에 오르는 화폐 모델 사임당보다 그에 훨씬 못 미치고 어림 없어도 주님 잘 믿어 살다가 우리 할머니 아무개의 믿음은 참 대단하였어라 하는 말과 세상 끝 날에 그리스도와 함께 영원히 살아날 그 소망으로 나는 찬양하고 기도하며 살아가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