꽤 오랜 동안 나는 스스로 참 진보적인 성향의 사람이리라 생각하며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어인 일인지 진보를 가르는 기준에 반미가 있는 것을 안 다음부터는 ‘아 나는 상당히 보수적인가 보다’로 바뀌었습니다.
그런데 반미 시위 참가자들 신은 신발이 티셔츠가 나이키 인 것이 그게 거슬려 눈길이 가는지 …
사실 오랜만에 교회 누리집에 들어와서 진보와 보수를 말하려는 것은 아닌데…
어쨌거나 나는 대량으로 장보기를 할 때 코스트코에 가기를 꼭 미국 가듯 별러서 가곤 합니다.
그날도 나는 USA마크가 확실한 물건들을 싣고 저녁 늦게 집에 들어오는데 희주 아빠의 눈길이 영 부담스럽게 느껴졌습니다만 오랫동안의 내공으로 꾹 누르며 속으로는 ‘좀 늦었기로 서니…’하며 내 팔자까지를 들먹이려다가 우선 목소리를 가다듬어 미국 마트 갔다 온 김에 농담처럼 “ What`s up ?" 하였습니다.
고기는 씹어야 맛이고 말은 해야 맛이라더니 말 시키기를 정말 잘했지요.
불편한 얼굴의 사연 인즉 복잡한 사거리에서 다른 생각하다가 전혀 의도 하지 상태에서 자연스럽게 끼어들기가 되었고 그것을 기분 나쁘게 받아들인 운전자 젊은이가 차에서 내려서며 ‘죽을래?’ 서부터 시작하여 숫자 나오는 온갖 상소리를 다 해대는데 성질 면에서는 자기도 한 성질 한다고 생각해 왔던 희주 아빠가 이미 머리 허옇게 서리 앉은 나이에 스무살도 더 어려보이는 젊은이와 같이 맞서 욕을 할 수도 없고, 같이 달려 나가 흠씬 패주고 싶은 생각이 나는 걸 참고 자신을 달래 ‘미안합니다’ 연신 하여 겨우 그 자리를 빠져 나왔지만 집에 와서 생각하면 할수록 참은 것이 억울하고 다시 가서 두들겨 주고 싶어 화가 자꾸 치민다는 것이었습니다.
우선은 ‘나때문은 아니구나’에 안심을 하면서 내가 할 수 있는 욕을 총동원하여 그 젊은이를 질펀하게 같이 퍼부어 주면서 그리도 화나는 것을 참은 사람이 참으로 잘한 것이며 그 상황에서 어떻게 참을 수가 있었는지 고맙기 까지 하다고 말해 주었습니다. 그러면서 나는 아파트 벽에 붙이려고 낮에 써두었던 경고문을 두 번 찢어 휴지통에 넣었습니다
그 경고문의 내용은 이런거였습니다
제목은 돌려보내주세요
내용은 엊저녁 음식물 재활용통 부근에 두고 간 나의 녹색 음식재활용 바구니를 돌려달라며 뉘신지 당신이 알뜰하여 남의 것을 가져 갈 때에 두고 간 나는 낭비 심한 주부겠느냐? 결코 아니라 잠시 운동하러 가느라 두고 갔을 뿐이니 어여 냉큼 제 자리로 돌려보내달라는 애닲은 사연 이었지요.
그것을 찢으며 내다가 벽에 안 붙인 내 자신에게도 고마웠습니다.
억울하게 욕을 먹어도 참고 아까운 내 물건을 가져갔지만 가져갈 만하니 가져갔겠거니 생각하니 나는 한결 마음이 가벼워졌지만 희주 아빠는 여전히 기분이 엉망이라고 하였습니다.
다음날 새벽 어쩜 그리 하나님은 나의 마음을 속속들이 아셨던지 그 아침 목사님 말씀은 어제의 그 상황을 보신 것처럼 잠언 29장 3절의 말씀에 부언하여 잠언 22장 3절 - 6절까지 말씀으로 내 귀가 뻥, 마음이 시워~언 하게 되어 그날 저녁 퇴근한 희주 아빠에게 성경 책을 펴 놓고 주욱 읽어주었습니다.
다른 때 같으면 내가 성경말씀 들먹이면 알았다고 경끼를 하더니 말 잘 듣는 어린아이처럼 희주 아빠가 마누라가 읽어 주는 잠언 말씀을 다 받아들이고 또 자신이 찾아 읽어보며 자기자신이 하나님의 시험을 잘 이겨 통과 한 것 같다하며 마음이 진정되고 기뻐하였습니다.
어느 사이 하나님을 알아가는 희주 아빠가 고맙고 그런 은혜 주시는 하나님이 난 정말 어린아이처럼 좋습니다.
억울하게 욕을 먹어도 대적하지 않고, 재빠르게 경고장도 안 붙이고 도리어 은혜가 되게 하신 인내와 겸손의 왕이신 예수님!
보수도 진보도 없는 그 진리를 나는 사모합니다.
하나님 그 진리의 말씀에 나는 참 자유로 나아갑니다.
진리 안에 오래 참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