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이 끝나는 날에도

그 후배를 다시 만난 곳은 장례식장이었습니다.
영정 속의 후배는 말이 없었고 다만 평소에 사진 중에 제일 잘 나왔다고 보여주며 자랑하던 그 사진만이 영정이 되어 바라보고 있네요.
엄마 영정 앞에 손 붙잡고 울고 서 있는 두 남매를 보며 나는 마음이 한없이 무너져 돌아 와서도 내내 눈물이 그치질 않더군요.
언제 세상을 떠난들 안 아까운 나이가 있겠습니까마는 어린 나이보다야 이제 20살이 넘은 남매이기에 그나마 좀 낫지 않을까 생각 할 수 있겠지요.
그러나 바로 올 봄 3월 희수 군대 가기 한달 전 만났을 때 우리 아들도 가을에 군대 간다며 걱정반 자랑반 하던 후배 얼굴이 떠오르고 내가 군대 간 아들 편지며 면회며 챙기다 보니 어쩌면 자식이 크면 클수록 부모가 챙겨할 일들은 끝도 없는 것 같아 그 후배 아들이 입대 후 겪을 쓸쓸함과 슬픔이 더 크게 느껴져 여간 우울 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사실 생전에 내가 그 후배에게 전화로 몇 번 신앙이 있느냐고 묻기는 했었지요. 카톨릭 이라는 말에 마리아 말고 예수 그리스도를 꼭 잡고 기도 하란 말을 하였지만 그건 얼마나 소극적인 권유였는지 이제 생각하면 더 찾아가 강권하여 전하지 못한 후회가 밀려옵니다.
늘 명품을 찾아 고집하고 악세사리로 치장하기를 좋아하고 먹는 것도 좋은 것을 누구보다 가려 먹던 후배가 그 좋아하고 자랑하던 모든 것을 두고 세상을 떠날 수 밖에 없던 오십의 나이는 얼마나 안타까운 나이인가하며 문상을 하고 나오는데 한 스님이 들어왔고 울다 지친 딸은 기진해 부축해나가고 아들은 주저앉아 우는 그 곳에서 들려오는 목탁 소리는 나의 가슴을 사정없이 때렸습니다. 안타까움은 더해지고 목탁소리는 내 마음을 후벼 팠습니다.
끝 날까지 예수 그리스도를 모르고 간 후배로 인해 나에게 그리스도를 찬양하는 그 크신 은혜를 주심에 나는 감격하고 감사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