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 속에 우리가

솔직하게 아주 솔직하게 가끔은 립서비스 말고 정말 마음에서 우러나는 빈정거림과 비난으로 말해주고 싶은 사람이 나타나지요.
원색적으로 ‘넌 정말 재수없어’ 라고 하거나 혹 ‘꼴도 보기 싫어’ 라든가 ‘옷 차림이 그게 뭐니’ 또는 아무 고마운 일도 해 주지 않았지만 ‘덕분에 고마웠어요‘ 라는 말을 할 때 등 등
마음에서 나오지 않는 말이지만 그렇게 말해야 좋은 관계를 유지 할 수 있으니까 말입니다.
가끔 생각해 봅니다.
속에 있는 것이 진심인데 나쁜 것을 솔직하게 말하면 큰일 나는 거겠지요.
그렇다면 거짓말 속에 서로 감정을 속이며 살아간다는 것일까요?
‘거짓말의 발견’ 인가 하는 영화를 보았습니다.
거짓이 없는 그 사회에서는 퇴직을 하는 동료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그동안 당신을 참아주라고 얼마나 힘들었는지 아세요. 능력도 없는 주제에 상사랍시고 참견이라니 안보게 되어 좋아 죽겠다는 둥. 어쨌든 이런 비숫한 비난을 서로에게 퍼 대지만 그들사이엔 상처도 감정도 없습니다. 오직 진실만을 말하기 때문에.
영화 속에서 마침내 거짓없는 무미건조함이 한 번의 감동적인 거짓말로 깨집니다.
직설적인 진실보다 남에게 상처주지 않는 선의의 거짓말이 더 필요하고 설득력이 있는 거겠지요.
있는 사실 그대로 말해도 재미없고 감동없고 그렇다고 감정을 속이며 살다 우울에 빠질 수도 할 수도 없고…
거짓이 아니고 진실보다 더 진실함 그래서 그게 바로 하나님의 진리가 아닐까요?
있는 대로 하면 참기 어려운 상황도 굽어 도는 저 길도 참 좋은 길이 있다고 알려주신 그것이, 나 같은 죄인도 진정 사랑하신다는 그것이 진리가 아닐까요?
날 위해 피흘리셨다는 그것을 믿는 것이 진리가 아닙니까?
그 진리 속에 아무것도 아닌 보잘 것 없는 우리는 자유롭게 살아가고 있는 거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