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들려오는 소식들이 좋고 기쁜 것들이 그리 많지 않은 요즘입니다.
인간들의 생활이 타락하면 자연도 그마큼 타락 한다던가요?
그런 것 같습니다.
오존층이 사라진다하고 기상 급변으로 우리는 여름 동안 불볕에 시달렸지요.
도시 매미들은 불빛과 씨름하며 발악처럼 울어댔고
농촌의 닭들은 새벽을 알리기는커녕 시시때때 아무 때나 운다네요.
그 중에 산들바람이 없어졌다는 기사를 읽고 생각이 많아지더군요.
폭풍 아니면 태풍에 익숙해져 정말 산들 바람이란 말조차 잊었던 것 같습니다.
조선일보 기사에서 부분 발췌한 글을 소개합니다.
급변의 이 시대에 믿는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 깊이 생각해 봅니다.
요즘 도심은 빌딩풍이 몰아치거나 무풍(無風)지대에 잠긴다. 빌딩풍은 건물과 건물 사이를 휘젓는 강풍이다. 올봄에도 25층 아파트에 이삿짐을 나르던 사다리차가 빌딩풍에 쓰러져 주차장을 덮쳤다. ‘바람을 안고 걸을 수 없는’ 제8단계 큰바람이다. 빌딩풍이 안 불면 도심은 나뭇잎 하나 까딱 않는다. 사람들 성정(性情)도 닮아간다. 겉으로는 무풍지대 열대야를 견뎌낸다. 속은 부글부글 끓는 ‘열섬 나라’ 주민이 돼간다. 마음속 산들바람은 추억조차 가물가물하다. 그래서 산들바람을 닮은 문화도 사람을 못 모은다. 소비자는 맵짠 문화 상품에 입맛을 버렸다. “초특급 태풍보다 센 대박 상품으로 지축을 흔들어야” 관객이 겨우 느낀다. 영화 소재로 쓰이는 지구 종말과 테러조차 시시해졌다. 자잘한 주제를 낮은 소리로 소곤거리면 알은체를 안 한다. 종교도 산들바람을 잃었다. 목회자가 산들바람처럼 말하면 신도가 곁을 떠난다. 일상에 묻은 고민을 다독이고, 소소한 행복을 말하고, 작은 깨달음을 들려주는 목회자는 인기가 없다. 목회자는 일요일 아침 전쟁·핵·세금을 들먹이며 목에 힘을 준다. 관자놀이가 튀도록 목청을 돋워 기도를 해도 신도는 존다.
우리는 드세졌다. 매사에 짜증만 늘었다. 집안에서 쓰는 말과 행동도 거칠다. 싹쓸바람 아니면 무풍이다. 폭언 아니면 무관심이다. 산들바람은 학교에서도 가르치지 않는다. 기후가 성정을 지배한다고 했다. 산들바람처럼 상대방에게 다가가는 마음을 어디서 배울 수 있을지 답답하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