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과 고통

공감한다는 것이 고통을 이해하고 나누어 함께 아파한다는 것을 의미하지 말아야 합니다. 어렵겠지만 공감한다는 것은 고통의 의미를,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의 뜻으로 두고 그냥 손을 잡아 주는 것으로 사용되어야만 옳습니다. 공감이 같은 뜻을 가진 이들의 집단에게 적당한 동질의 언어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공감은 크게 하나로 생각하는 것에만 적용되어야 하니까요
예수님처럼 공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손에 손을 잡아 서로 간, 온 만물을 화목케 하시려 하셨으니까요. 하나님의 한 혈통으로, 형제 자매로 말입니다. 기독교의 무리로 하나가 되는 것을 공감이라는 말로 사용하면 예수님이 안타까워하실 것입니다. 온 인류 만물이 하나가 되는 것에만 공감이라는 의미가 쓰여야 옳습니다. 공감에는 차별이 없어야 하기 때문이지요
세상은 이 바른 공감이 없어서 냉랭한 것입니다. 자기와 같은 사람만 찾으려 하고 자기와 다른 사람을 배척하려는 공감에 대한 바르지 못한 의식이 바로 세상을 힘들게 하고 있는 것입니다. 공감은 상대의 아픔에 함께 아파해주는 것만이 아닙니다. 공감은 어떤 아픔이라도 그 원인을 하나님께 맡겨 아는 체 하지 말아야 하기에 차라리 그냥 손을 잡아 주는 것 같은 그것입니다
탕자 같은 우리에게 하늘 아버지는 그냥 손을 내미시고 잡아 주셨습니다. 탕자의 아픔을 함께 손잡고 우신 것이 아닙니다. 뭘 좀 안다고 아는 체하는 이들이 아니라 그냥 모를 일이다 하고 그렇구나 하여 함께 옆에 서 주는 것이 공감입니다. 아픈 욥에게 아는 체하는 친구들이하나님의 책망을 받았습니다. 이상할 것이 하나도 없어야 비로소 공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