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나이를 먹으면
그 연륜에 따라 자라야 한다
늘 젖만 먹고 살거나
늘 청춘만 노래할 수 없다
자라지 않는 청춘은
차라리 부끄러움이다
신앙이라도 연륜을 얻으면
자라야 한다
자라지 않는 신앙보다는
차라리 불신이 나을 수 있다
십자가를 만나고도 자라지 않는 믿음은
아직 기독교가 아니다
기독교는
그리스도교이기 때문이다
기독교가 십자가를 지나
사랑으로 나오지 않는 것은
유대교가 홍해를 지나
율법으로 나오지 않음과 같다
율법의 새 계명이
사랑이기 때문이다
사랑이 무엇이냐의 문제는
고리도전서 13장에 물으라
이 시대 기독교의 영성운동은
사랑운동이여야 한다
사랑이 바로
성령충만이다
은혜충만도 역시
사랑을 이르는 말이다
경건훈련은 다름아닌
사랑훈련이어야 한다
사랑하지 않는다면
믿음이라도 무익하다
사랑하지 않는 전도마저
자신에게는 그 무슨 유익이 있으랴
하물며 사랑하지 않는 정치 참여랴
두말하면 잔소리다
지금 사랑을 가르치지 않는 교회는
아직 초보다
비록 산을 옮길만한
능력이 있을지언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