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살처분하랴

구제역으로 인하여 눈물 흘리는 이들이 참 많아 마음이 아픕니다. 제 몸 같은 짐승들을 잃은 농부의 마음이야 오죽하겠으며, 멀쩡한 짐승들을 묻어야 하는 이들의 마음에도 눈물이 배여 있음을 보았습니다. 애지중지하던 것들이 하루 아침에 아무 것도 아닌 것이 되고 마는 현실을 우리는 지금 체험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크신 위로가 두루 있으시기를 기도합니다.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짐승들을 죽이고 있습니다만 정작 죽여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우선 살펴볼 것은 병균입니다. 병균을 영원히 박멸할 수 있을까요?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어떤 형편에서든지 어떤 모양으로라도 저들은 사라지지 않고 있어서 짐승들을 괴롭힐 것입니다. 마치 사단처럼요. 사단을 영원히 제거할 수 없는 것처럼 병균도 제할 수 있는 대상은 아닐 것입니다. 짐승이 있는 한 말입니다. 그러니 병균은 없이 할 대상에서 제해야 하겠습니다.

두 번째는 짐승입니다.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랴 하는 말이 있듯이 우리가 병균이 무서워 짐승을 키우지 않을 수는 없는 일입니다. 그러니 짐승을 죽여 해결하는 일은 지금이야 어쩔 수 없다 하여도 이런 조치는 문제에서 항상 해결책은 될 수는 없는 일입니다. 지금 애매하게 죽고 있는 짐승들에게도 이런 의미에서 참으로 미안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무엇을 죽여야 할까요? 그것은 네덜란드의 사례를 보면 좀 답이 나올 듯합니다. 네덜란드는 우리나라보다도 축산의 비율도 높고 오래 되었으나 한 번도 구제역으로 힘든 일은 겪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그 이유를 조사해보니 저들의 짐승들은 우리나라의 것들보다도 면역력이 월등하다는 결과를 얻었다고 합니다. 그러니 면역력을 높이는 것이 영원한 해법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 누구를 죽여서 해결될 문제가 아닌 것입니다.

짐승들의 면역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짐승들이 짐승처럼 태어나고 짐승처럼 먹고 자라며 짐승처럼 뛰놀 수 있어야 한다고 합니다. 지금처럼 대량사육하고 운동도 금지되고 속성사료를 먹고 자라는 것이 문제가 된다는 말입니다. 그러고보니 이제 무엇이 죽어야 할 것인지 해답이 하나 떠오릅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 인간들의 욕심입니다. 많이 속히 만들어내어 대량으로 팔고 제공해서 막대한 부를 쉽게 쌓으려하는 우리 인간들의 욕심이 결국 면역력이 없는 짐승들을 만들어 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정작 죽여야 하는 것은 우리 인간들의 욕심이었습니다. 그것이 원흉입니다.

결국 욕심을 살처분 하는 것이 옳을 듯합니다. 우리를 위하여 우리의 욕심을 잘라 땅에 묻어 버려야 해결이 되는 문제였습니다. 욕심이 장성하여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하여 사망을 낳는다는 하나님의 말씀처럼 지금 우리가 욕심을 내려놓지 않으면 이 후로는 짐승이 아닌 인간을 살처분 해야만 하는 일이 생기지 않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럴 수는 결코 없는 일이지만요.

욕심이 없다면 병균은 있어도 짐승과 아무 상관이 없고 인간은 깨끗한 고기를 먹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 인간의 욕심을 죽이고 묻고 잘라내어 결국 살처분해야 모든 문제가 해결 되리라고 보입니다. 욕심이 있는 곳에는 문제도 항상 있습니다. 순리를 따르고 감사하며 나눠살면 모두가 좋은 세상이 올 것입니다.

성경 디모데전서 6장 6절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진정한 부자가 되기를 원합니까? 만일 그대가 지금 행복과 만족을 느낀다면 그대는 이미 부자입니다”(딤전6:6)라고 말입니다. 늘 족한 줄 알며 감사하고 기뻐하는 것이 결국 구제역 뿐만이 아니라 만 병에도 근본적인 치료약이 되는 줄 알고 살아야 하겠습니다. 눈물 흘리는 이들에게 다시 한번 하나님의 깊은 위로를 전합니다. 힘을 내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