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ppy Easter!

겨우내 발 목을 감싸주던 부츠를 과감히 벗어 버리고
봄 맞이로 구두를 새로 샀습니다.
알 박힌 반짝이 끈이며 가격과 디자인 둘다 내 구미에 맞기에
주저 할 것도 없이 그 자리에서 신고 나왔습니다.
5분도 걸어가지 못하고 후회할 것을.
처음에 내 발목 옆이 조여 오더니 어느덧 뒤꿈치 부분에서는 살갗이 까지고 피가 줄줄 흘러
구두까지 젖고 보니 이미 바꿀 수도 없는 상항에 이르렀습니다.
그 쓰라림, 후회, 잘못 산 것에 대한 억울함,
무엇보다 그런 디자인의 구두를 산 후 언제나 피를 보고 말았다는 것을 나중에야 생각해내는 내 자신의 미련함 때문에
상처는 더 쓰라렸지요.
대일 밴드 위에 탈지면 잘라 붙이고 거기다 다시 대일 밴드 덧 붙이고 그래도 여전히 남는 쓰라림을
두 발 가득 느끼며 남들은 모르는 나의 잘못을 거듭 거듭 후회하였습니다.
미련한 내 잘못을, 억울한 그 아픔을.

4월 4일 주일에 그리스도의 수난 영화를 보았습니다.
그러나 내가 본 것은 영화가 아니었습니다.

그토록 처절한 사랑 하심에 소리내어 울지도 못했습니다.
갈갈이 찢기운 상처 마다 마다에 가득 고여 나는 우리를 향한 용서에 전율하며
흐르는 눈물마져 송구하였습니다.

몇년전 내가 사고로 의사도 내일을 장담할 수 없다던 그 시간에 주님은 내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를 지켜보리라고.
그 후 난 살아 났고 때로는 주님을 잊은 냥 세상에 연연하며 살아 왔습니다.
그리고 그 영화에서 내 오랫 동안의 의문 지켜보리라의 해답을 보았습니다.
어째서 지켜 주리라가 아니고 지켜 보리라 인지 온 가슴으로 알고 말았습니다.
태초부터 지켜 보고 계신 주님의 사랑이 거기 있었습니다.
하늘 어버지가 사랑하는 그 아들의 고초를 어찌 바라만 보았겠습니까?
아들의 고통의 순간마다 같이 고통하며 같이 참으며 같이 피 흘리신 그 사랑이 거기 있었습니다.
주님은 지켜 보시며 나와 모든 순간을 함께 하셨던 겁니다.

아마 잘못 산 구두같은 하찮은 후회를 하고, 또 구두를 사고 또 다른 잘못을 하며 난 살아 갈 것입니다.
그러나 내 죄를 기억지 않으시는 사랑으로
그 참혹한 보혈로 더 이상 침륜에 빠지지 아니하며
주가 나를 부르시어 택하셨다는 축복을 느끼며 눈물보다 진한 기쁨으로 행복한 부활절을 맞이합니다.
Happy Easter!
Merry East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