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닭없이도 믿으십시오(요9:8-12)
그래야 복을 받습니다
까닭이 없어도 부모를 사랑하며 사는 자녀가 그 안정감으로 인하여 세상 일에도 성공을 하듯이 까닭 없어도 하늘 아버지를 섬기며 사는 이들이 그 평안함으로 인하여 복은 받습니다. 좋은 일이 있기때문에 그 까닭으로 믿습니다 하는 믿음에는 사단의 미혹이 있다는 것이 욥기서가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입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어린아이처럼 순수하게 자신을 섬기는 이들에게 그 은사가 복이 되게 하시고 하늘의 일들을 깨우쳐 알게 하십니다. 이것이 오늘 본문이 주는 교훈입니다
그러니 까탈스러운 사람이 되지 말아야 합니다
본문에 등장하는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에 대해서도 가난한 자들에 대해서도 매우 까탈스러운사람들로 등장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사람에게는 참복에도 구원에도 이르지 못하고 있습니다. 다만 하나님의 나라는 어린아이처럼 옳다 그르다 하지 않고 아멘하여 받을 수 있는 이들에게만 허락된 나라입니다. 바리새인들은 교리의 틀에 갇혀서 판단하려는 자세로 인하여 이 땅에 임하신 하나님마저도 알아보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되레 그리스도를 교리의 잣대로 정죄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순수함을 잃으면 영안도 잃습니다
범사를 모를 일이다 하고 맡겨 살아야 합니다
그것이 참으로 좋은 믿음입니다. 무엇을 안다고 하는 것은 사실 측량할 수 없는 분에 대하여 스스로 잘 모르고 있다는 증거가 될 뿐입니다. 하나님을 아는 사람이라면 이렇게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내가 아는 것은 다만 내 아는 것이 참으로 작은 것이다 하고 말입니다. 그 사람이야말로 진실로 무엇을 아는 자입니다. 잘 모르지만 순종합니다 하는 믿음 끝에 참복이 있고 천국이 있습니다. 익어가는 신앙인이라면 겸손함도 커져가야 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늙어가는 것 뿐이니까요
그러니 순수해지십시오
그래야 복을 받습니다. 조세 배너라는 영성가가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 푹 쉬고 나면 감기가 낫듯이 우리는 개성이라는 우리의 생각들을 내려놓고 진리이신 하나님을 의지하고 살면 우리 안에 있는 참 본성이 우리의 문제를 해결해 놓곤 합니다. 우리는 거기서 하나님의 임재를 볼 수 있습니다 하고 말입니다. 하나님이 바로 이런 안식과 창조의 처소입니다. 저는 우리 교회도 이런 안식의 자리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아픈 이들이 고침을 받고 가는 안식처 말입니다
승리하시길 원하신다면
바른 믿음과 바른 인생은 마음의 시끄러움이 잠잠해지는 쪽에 있다는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이런 인생만이 익어가는 인생입니다. 성경의 용어로 선을 행힌디는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하나님과 세상을 향하여 조건과 까닭들이 사라져 가야 합니다. 그래야 오히려 복이 임합니다. 자녀들에 대해서 조건을 내려 놓아보시기를 바랍니다. 그 내려 놓음의 정도에 따라 하늘 참복의 정체는 점차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이런 복을 누리시는 모두가 되시기를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