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심이 하나님 앞에 있게 하십시오(요7:37-39)
그러면 좋은 날이 올 것입니다
양심을 하나님 앞에 두시고 그 뜻을 따라 살아보십시오. 삶의 풀림을 체험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요셉처럼 양심으로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기만 하면 하나님은 우리의 문제들을 풀어서 우리를 요셉의 축복에 참여케 하실 것입니다. 이처럼 모든 문제는 안에서부터 풀어야 풀립니다. 그것만이 참인 것이지요. 문제를 밖으로부터 풀려고 하는 모든 시도는 참이 아닙니다. 이것으로 하나님을 참과 거짓을 분별하십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도 그렇습니다. 그 양심이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 앞에 사셔서 순종의 승리를 이루신 그 예수님을 우리의 왕으로 모시고 소망하며 사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생명나무가 자라듯 참복도 자랄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 본문이 주는 교훈입니다
그러니 항상 양심으로 하나님을 먼저 떠올린 후 일하는 방법을 배워내야 합니다
다윗이 복을 받은 이유도 그 한 가지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을 떠올려 말을 타고 하나님을 떠올려 전쟁을 하였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그의 삶을 아름다운 모습으로 풀어 작은 천국이 되게 하셨습니다. 만약 우리도 그렇게 따라 하지 않는다면 그것으로 인하여 많은 어그러짐만을 체험케 될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1장 29절로 30절에 하신 말씀처럼 말입니다. 그러나 다시 양심으로 하나님을 모시고 다시 시작을 하면 다시 풀림이 시작됩니다. 그러니 하나님보다 앞서지 않도록 깨어 기도하며 살아야 삶이 풀린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기도하지 않고는 아무 것도 시도하지 말기를 권면드림니다
우리 양심 앞에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영만을 두고 살아야 합니다
우리를 구원할 다른 이름을 주시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지금 이 시대에는 바울의 영도, 예레미야의 영도 필요하지 않습니다. 오로지 예수 그리스도께서 보내시어 지금도 우리와 함께 하시는 바로 그 영만을 의지해야 합니다. 그 영만이 성령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성령님이 하시는 일을 다양할 수 있으나 오로지 한 목적, 즉 예수 그리스도를 조명하는 일만을 목적으로 일하십니다. 이것에는 예민한 분별력을 가지고 믿어야만 합니다. 영이라고 다 믿지 말고 분별하여 믿으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다시 받아 예수그리스도를 통해서 오신 영만이 성령이십니다. 분별하시길 바랍니다
결국 참복은 양심을 통해서 옵니다
그래서 양심을 회복해야 합니다. 고려대 김우창 전 교수가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 ‘사람이 자신의 삶을 의미있게 살려고 하면 우선 양심의 소리를 따라 살 수밖에 없는 일인데 그것은 바로 자기 삶의 가장 근본에 놓인 존재의 부르심에 귀를 기울여 산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 인간의 삶에는 항상 그 근저에 어떤 근원적인 것이 있어 왔고 언어를 초월하는 근본에 대한 느낌이 항상 있어 왔습니다. 우선 그것에 귀를 기울여 사는 이들만이 깊이 있는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으로 말미암아야 삶의 문제도 지긋이 넘어가 순조로울 수 있습니다. 나는 아직 종교는 없지만 그 어떤 것이 항상 내 안에서 나를 이끌었다는 것은 잘 압니다. 다만 내가 그것의 정체를 아직까지 확정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내 인생의 아쉬운 요소입니다’ 하고 하였습니다. 참 정직한 이 시대의 한 어른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좋은 날 보기를 원하신다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도깨비 같은 복을 내려주시려는 분이 아니라 생명나무가 자라듯이 회복으로 복을 주시는 분이시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 양심이 하나님 앞에 있는 순간은 생명나무가 자라는 순간이요 그렇지 않는 순간들은 세속 나라가 자라는 순간들입니다. 이 사실을 깨달아서 할 수 있는대로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순간들을 늘려서 생명의 열매들을 풍성하도록 거두는 삶을 살아야만 합니다. 이런 회복이 가득한 모두가 될 수 있기를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