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끗한 양심을 가지십시오(요6:49-51)
그러면 삶도 풀릴 것입니다
링컨은 시종 깨끗한 양심을 가졌습니다. 그것이 그를 승리로 이끈 요인이 되었습니다. 요셉도 역시 양심이 바랐습니다. 요셉도 그것으로 말미암아 승리로 이끌려 간 것이지요. 양심을 바로 하여 살아가면 그것 자체가 길이 되어서 삶을 풀리게 합니다. 양심이 허락하지 않으면 이익이라도 과감히 포기할 수 있어야 합니다. 견리사의(見利思義)라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이익이 찾아오면 그것이 바른가를 먼저 생각해 보라는 말입니다. 예수님은 우리 육체가 아닌 우리 영혼, 즉 양심의 건강을 위하여 그 양식으로 오신 분이십니다. 이것이 오늘 본문이 주는 교훈입니다
육체를 위한 믿음을 버리십시오
그것으로 영을 살릴 수는 일이 아니니까요.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어도 죽었거니와…’하셨습니다. 썩어질 양식을 위해 일하지 말고 영생할 수 있는 양식을 위해 일하라고도 하신 것입니다. 즉 영혼과 양심이 살아나는 참양식을 찾아 회복을 도모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니 육체를 위한 기복신앙은 이제 그만 좀 버려야 하고 영혼을 위한 양심의 회복을 위해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라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공부 잘 하라’ 는 가르침만을 주로 하고 ‘바르게 살아라’ 라는 가르침을 하지 않는 이유로 인하여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깨달아야 합니다
아울러 매사에 본질을 추구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기를 원하시는 것은 바로 당신 자신입니다. 당신의 것이 아닙니다. ‘내 살을 먹어야 한다’ 하시는 말씀을 이해합시다. 우리 조상들은 하나님께 참예 하지를 않고 하나님의 것, 즉 제단에 참여함으로 말미암아 본질이신 하나님을 놓치고 말았는데 그것을 바로 우상숭배라며 하나님께서 책망하셨습니다. 고린도전서 10장 16절로 21절에 잘 나와 있습니다. 그뿐 아니라 범사의 일들도 다 그 본질을 굳게 불들고 해야 합니다. 그래야 더 많은 것들을 얻어 누릴 수 있습니다
허니 본질인 양심을 위해 사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모든 것들이 회복될 것입니다. 2002년 축구를 보러 왔다가 한국에 눌러 살아가는 영국인 튜더씨가 쓴 책을 보면 한국인들은 기적을 얻은 대신 기쁨은 잃어 버린 민족이 되었노라고 탄식을 하고 있습니다. 어느 민족이나 빠지기 쉬운 함정입니다. 슈퍼에서 거스름돈을 더 받았거든 망설이지 말고 갖다 주어 양심의 회복을 도모하십시오. 그것이 결국 자신에게 더 좋은 결과를 가져올 것이니까요. ‘양심대로 살아라’ 하고 자녀들을 가르쳐야 합니다. 그것을 빼 먹으면 그에 알맞은 보복을 자녀들에게서 오히려 당하게 될 것입니다.
좋은 날 보기를 원하신다면
하나님은 우리가 1차적으로 양심적이기를 원하십니다. 예수님처럼 말입니다. 그러나 설혹 그 그렇지는 못했다 하더라도 2차적으로나마 양심적이기를 원하십니다. 다윗처럼 말입니다. 그러나 3차에서라도 양심적이 되십시오. 그렇지 않고 계속하여 자신을 변명만 해 나가다가는 파멸을 보게 될 것입니다. 육체를 먼저 세우고 양심은 나중에 하지 마십시오. 그럴 수 없기 때문입니다. 얼굴 관리에 철저한 것처럼 양심관리를 시작하십시오. 그러면 삶도 풀릴 것입니다. 승리합시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