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하게 이끌려 사십시오(요6:39-40)
그러면 삶도 풀릴 것입니다
아인쉬타인은 순수한 믿음을 가졌습니다. 순수하게 이끌림 받아 전쟁을 피했고 이끌림 받아 논쟁도 피했습니다. 그러면서 두고 두고 진리를 증거해낸 삶을 살았습니다. 고집부리고 앙탈하는 삶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악인을 보고서라도 분노하면 오히려 자신이 해를 입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세상에서 가장 순수하게 아버지께 이끌려 사셨습니다. 그점이 바로 그 분이 메시야이신 증거입니다. 그 분을 믿고 따르는 이들은 소생할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 본문이 주는 교훈입니다
부족해도 이렇게 살기를 갈망하는 자들은 다 천국에 이릅니다
그런 자들을 예수님께서 끝까지 견인(牽引)하시겠다고 말씀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처럼 순수하게 순종하며 살아야 하는데 부족하구나 분발해야지 하는 자세로 사는 이들도 천국행 열차를 탄 사람들이라는 말입니다. 이미 순수해져서 안식에 들어간 사람들과 함께 주님이 오셔서 새 몸을 입히고 세우셔서 하늘 백성으로 서게 하실 것입니다. 물론 그 성취된 분량에 따라서 아주 적절하게 배치되어 구원에 나갈 것입니다. 하여 우리는 할 수 있는 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장성한 믿음의 분량에 이르도록 정진해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중요합니다
대부분의 신자들은 예수님하면 죄사함을 떠올립니다. 그것도 있습니다마는 십자가와 순종이 가장 먼저 떠올라야 바릅니다. 그것이 메시야의 핵심이기 때문입니다. 이 핵심을 외면하고 부분을 전부인 것처럼 오해하는 것만큼 치명적인 일은 없습니다. 우리 한국 교회가 그렇습니다. 아니 모든 교회들이 다 그래왔습니다. 그러나 유대인에게서도 알곡을 거두셨고 유럽 아메리카에서도 그러하셨듯이 우리나라에서도 역시 알곡들은 남아서 구원의 반열에 이르고 또 이를 것입니다. 바라옵기는 자기 유익만을 위한 기복이나 부분신앙을 탈피하여 순종의 핵심을 붙든 자로서 알곡으로 남는 이들이 꼭 될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여하튼 순수하게 이끌려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 삶이 풀립니다. 썬다싱은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순수한 참사랑에서 벗어나면 이기적인 자기 사랑의 사람이 되고 거기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을 믿어 원수라도 사랑할 수 있는 믿음에 이르게 될 때 비로소 회복이 되어 구원에 이르는 것이다 하고 말입니다. 바른 성찰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우리가 구원을 얻은 증거는 형제를 사랑함으로써라고 요한일서 3장 14절에 이르고 있습니다. 원수라도 사랑할 수 있어야 아들이 된다고 마태복음 5장 45절에 이르십니다. 순수한 믿음을 가져야 구원에 이른다는 말입니다. 잊지 말아야 합니다
좋은 날 보기를 원하신다면
복 받으려고 예수 믿겠다는 생각을 좀 내려 놔야 합니다. 대신에 어디로 이끄시든지 감사하며 따르겠습니다 하는 마음을 키우려고 주님 앞에 나와야 합니다. 아브라함 요셉 다윗 링컨 등 믿음의 선진들의 삶을 한 번 떠올려 보십시오. 그들이 부자되려고 믿음을 가졌었나요? 그렇지 않습니다. 순종함을 배우려고 믿었습니다. 거기에 참복이 따라왔을 뿐입니다. 처음에는 비록 힘이 들어도 어느 순간부터는 마치 시소처럼 길이 열립니다. 이런 순수한 믿음의 길을 선택을 마침내 승리에 이르는 모두가 되시기를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