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을 바로 보세요(요1:29)
그러면 하늘 문도 열릴 것입니다
누가 자신을 바로 이해해주면 마음이 열리듯이 하나님도 당신을 바로 이해해주는 자에게 하늘 문을 열어주십니다. 다윗도 하나님을 선하시고 인자하신 분으로써 바로 알아드렸기에 복을 받았고 베드로도 예수님을 바로 알아드려서 복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은 복을 주시는 분으로만 이해하면 오히려 복을 받지 못합니다. 본문에 등장하는 요한처럼 바로 이해해야 복을 받습니다. 이것이 오늘 본문의 요지입니다.
예수님은 지금 하늘 우편에 앉아계십니다
우리는 이것을 바로 이해하고 알아드려야 합니다. 예수님은 부활 승천하셔서 지금 하늘 우편에 앉아 계십니다. 거기서 이제는 우리가 성화되기를 원하시며 기도하고 계시는 분이십니다. 그 예수님에게 복을 달라고 무조건 들이댈 일만이 아닌 것입니다. 그 예수님 앞에서 뜻대로 변화된 삶을 살게 해 달라고 기도하며 노력해야 합니다. 그게 지금 예수님을 바로 알아봐 드리는 사람의 자세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람이 예수님의 칭찬을 받을 것입니다
이후로 예수님은 우리를 심판하러 오십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구원하러 오실 분이라고만 생각해서는 복을 받지 못합니다. 바른 이해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우선 우리를 심판하신 후 그에 맞는 상을 베풀어 주실 것입니다. 그러하신 예수님을 세례요한처럼 바로 이해하고 알아봐주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냥 복을 달라고만 할 일이 결코 아닌 것입니다.
누구든 바로 알아봐 주십시오
그래야 복을 받습니다. 앤서니 스토라는 이가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하나님께 무슨 좋은 것을 가져다 드리려고만 하는 생각보다는 차라리 그 분 앞에서 그 분을 인정해드리고 알아봐드리고 지지해드리는 것이 아니겠는가? 하고 말입니다. 미가서 6장 6절로 8절도 역시 하나님께서 그것을 좋아하신다고 말씀을 하고 계십니다. 알아봐드리는 것이 최고의 사랑입니다. 하나님이 무엇이 부족한 분이 결코 아니시기 때문입니다. 바로 알아보는 것은 그 분을 시원케 해 드리는 일이기도 한 것입니다
좋은 날 보기를 원하신다면
자기를 위한 믿음을 버리시기를 바랍니다. 이기적인 믿음은 비록 산을 옮길만한 능력이 있어도 결국 자신에게 아무 유익이 되지 않습니다. 오직 하나님을 위하고 그리고 이웃을 위한 믿음만이 하늘에서는 가치가 있는 일입니다. 예수님은 지금 그런 믿음을 위해서 하늘 우편에서 간구하며 계시는 분이십니다. 그 분이 원하시는 성화의 삶을 바로 이해하고 살아내셔서 하나님 마음을 시원케 해드리고 칭찬 받으시는 모두가 되시기를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