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만을 도모해 보세요(요1:16)
그러면 기이한 일들을 보게 될 것입니다
어떤 일이든 몰입하면 충만이 오고 충만하면 탁월함도 옵니다. 믿음 역시 몰입하고 충만하기를 원하여 그 나라와 의를 먼저 구하라 하신 것구요. 바울도 하나님으로 충만하여 기이한 능력의 삶을 살았습니다. 반대로 선하심이 충만하지 못하면 모든 고통이 시작됩니다. 문제는 중만입니다. 구원도 그렇습니다. 예수님만이 우리의 유일한 구세주가 되시는 이유도 예수님만이 진리의 하나님으로 충만하신 분이셨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오늘 본문이 주는 교훈입니다.
예수님의 구원은 완전하고 충만한 것입니다
그 분만이 완전하시고 충만하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의로운 죽음을 죽은 자들도 없지 않고 훌륭한 사랑을 가진 사람도 없지는 않으나 그들이 아닌 예수님만이 우리의 구세주가 되시는 이유는 예수님만이 완전하신 진리의 사람으로 충만하셨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충만입니다. 이것을 분별하여 알아보는 자들만이 제자가 될 수 있습니다. 그 예수님의 대속의 죽으심과 부활은 우리와 만물을 구원하시기에 아무런 부족이 없으십니다. 완전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만을 믿는 것입니다.
아울러 일반적인 믿음의 단계를 넘어서야 합니다
은혜 위에 은혜를 구분하여 구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지요. 야베스의 기도가 속히 응답이 되었노라고 한 때 유명했지만 그 이유를 말하는 이들은 별로 없었습니다. 그는 복위에 차별된 다른 복을 구하였기에 응답이 속이 된 것입니다. 바울도 마찬가지입니다. 일반적인 믿음을 구하지 않고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는 후자의 믿음을 구하였기 때문에 쓰임 받을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진리로 충만하시어 일반적은 은혜가 아닌 은혜 위의 은혜를 베풀어 주신 분이십니다. 믿음도 은혜도 차원이 높아져야 필승입니다.
모든 것에서 충만해 보십시오
그러면 삶도 풀릴 것입니다. 스페인의 사라고사 대학에서 연구한 바에 따르면 개가 짖는 것은 용감해서도 아니며 자기를 지키려고 하는 것도 아닌 다만 자신이 행복하지 않아서 짖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행복한 개는 짖지 않는다 라는 것을 밝혀낸 것이지요. 마찬가지로 우리에게 예수님의 은혜가 충만하다면 기쁨이 넘치게 되고 삶도 풀릴 것입니다. 그러나 은혜가 부족하며 피곤하고 싸우며 불평을 하게 됩니다. 충만해야 복을 받습니다.
좋은 날 보기를 원하신다면
우리가 아직 충만하지 않다는 것을 자각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만 충만을 향하여 겸손하게 그 때 그 때 충만을 도모하며 살아야 합니다. 가령 권투선수가 몸을 잘 만들어서 링에 오르는 것처럼 충만하게 하여 일하고 충만하게 하여 행사를 하며 사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끄실 것입니다. 충만으로 삶을 풀어내시는 모두가 되시기를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할렐루야.